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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하나
 궁금해   deux.
조회: 2358 , 2012-11-08 21:29


오빠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
여기에 이렇게 쓴 말 치고
내가 직접 할 수 있었던 이야기가 없었던 것을
잘 알기에 씁쓸하지만
그래도 적어본다.

오빠가 요즘 나를 답답해하는 것 같다.
내가 약국 일도 하기 싫고
그렇다 그랬더니,
내가 요즘 굉장히 의욕없다고 느끼는 것 같다.

어제도 내가
요즘은 식단 관리 하느라고
약국에서 군것질을 안 한다고 이야기했다.
그래서 자랑하듯
'오늘도 만두랑 호떡 이런 거 하나도 안 먹었다'
고 이야기했더니,
목소리가 안 좋아지면서

'그래도 사람들이랑 어울려서 먹어'
그러더니
매우 걱정되는 목소리로
'사람들이랑 어울리는 게 불편해?'
라고 물었다.

나는 순간 어이가 없었고
화도 나고 짜증도 났다.
내가 그렇게 사람들이랑 못 어울리는 애로 보이나? 
내가 그렇게 소심하게 보이나? 
왜 그런 걱정을 해, 자존심 상하게? 
라는 생각이 들었다.

확실히
오빠는 지금 내가 답답하다.
저번에도 나에게 이야기했었다.
생각보다
나와 자신의 성격이 다른 것 같다고.
그래서 내가 성격을 조금 바꿨으면 좋겠다고.
내가 답답하다고.

짜증난다.
답답한 게 이해는 가지만
그래도 나를 답답해하는 사람이 나를 지켜보고 있다는 것은
나를 숨막히게 한다.
그리고 오빠에게 일상을 이야기하는 것이 싫어진다.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주지 않고
이렇게 해봐라 저렇게 해봐라
하는 것은 부담스럽다.
그래서 애써 밝은 척 해야 하는 것이 너무 싫다.

이건 내가 살면서 언제나 겪어온 일이기는 하다.
그동안은 사람들을 피하는 방식으로 이런 괴로움을 피해왔다.
친구를 만들지 않으니
나를 이해시킬 사람도 없었고
나를 이해하는 사람과만 친구가 되니
마음이 편했다.
그런데
나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과 
친구도 아닌
연인 사이가 되니
너무나
너무나 
힘이 든다.

내가 왜 친구를 만들지 않았는지 
이해할 법도 하다.
그리고 그것은 상당히 정확하고 효과적인 
생존법이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내가 조금만 더 어렸을 때 이런 괴로움을 겪었 놓았더라면
지금은 더 괜찮았을 텐데, 하는 생각도 든다.

아무튼.
가장 중요하고 본질적인 것은
지금 나는 힘들다.
왜 힘든 지 오빠에게 설명해주고 싶어서
이런 저런 생각을 해보았지만
전혀 모르겠다.
그냥 나는 힘들다.
설명할 수 없다.



아르바이트를 해야 돼서 힘들까? 
아빠에게 성폭행을 당해서 힘들까? 
돈이 없어서 힘들까? 
엄마에게 의지할 수 없어서 힘들까? 
남자친구가 나를 이해해주지 못해서 힘들까? 
아빠가 너무 미워서 힘들까? 
그런 분노들을 너무 참고만 살아서 그 분노들이 내 안에서
자신을 좀 알아달라고 소리치고 있어서 힘든 걸까? 
이런 것들을 어떻게 해야 할 지 나는 도저히 모르겠어서 힘이 들까? 


그러면 아르바이트를 안 하면 괜찮아질까? 
아빠에게 성폭행을 당하지 않았더라면 괜찮았을까?
돈이 있으면 괜찮아질까? 
엄마에게 의지할 수 있으면 괜찮아질까? 
남자친구가 나를 이해해준다면 괜찮아질까? 
아빠를 미워하지 않게 되면 괜찮아질까? 
그 분노들을 다 표출하고 나면 괜찮아질까? 
이런 것들을 어떻게 해야하는 지 알게 되면 괜찮아질까? 




.
.


내가 바라는 나의 모습과
내 지금의 모습 사이의 간극이
너무나 크면
사람은 괴롭다.

내가 바라는 나의 모습은
아빠로부터 성폭행 당하지 않고 
좋은 부모를 만나
행복하게 자라서
돈 걱정 없이
아르바이트 하지 않고
학교 다니면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경험도 쌓고 공부도 하고 사람도 만나면서
엄마에게 속 이야기도 좀 해보고
좋은 아빠랑 잘 지내고
동생한테도 잘 해주는 좋은 누나가 되어주고
남자친구도 힘들게 하지 않고 예쁘게 사귀는 
그런 모습이다.

그러나 지금 나의 모습은
아빠로부터 10년이 넘도록 성폭행을 당했고
아빠는 형편 없고 엄마는 자아가 약해서 나를 힘들게 하며
행복하게 자라지도 못했고
돈 걱정도 많고
아르바이트도 해야 하고
학교도 못 다니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도 없고
경험도 공부도 사람도,
하나도 얻을 수 없고
엄마랑 속 이야기도 할 수 없고
좋은 아빠도 없고
동생한테도 잘 해주지 못하고 있고
남자친구와도 잘 지내지 못하고 있는
그런 모습이다.

.
.

간극이 지나치게 크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바라는 모습이 너무나 이상적이다.

사람은 중도에서 산다고 했는데,
나는 하늘 끝을 바라보면서
지하에서 살고 있다.


땅으로 올라올 필요가 있는데
혼자 올라오기에는 너무나 힘들다.
자꾸만 미끄러져 지하로 떨어진다.





.
.

저 간극을 줄이는 방법은 
바라는 모습을 낮추는 것과
현재의 내 모습을 높이는 것이 있을 것이다.
둘 다 같이 가야 한다.

바라는 모습을 낮추려면
지금의 나를 인정해야겠지.
성폭행을 당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아빠에 대한 미움도 인정해야 한다.
내 안에 누군가를 죽일 듯이 미워하는 마음이 있다는 것을
바라보아야 한다.
하지만 나 혼자서는 하기 힘든 일이다.
그래서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것이다.

나는 잘 하고 있다.
잘 찾아가고 있다.

돈도 없고 아르바이트를 해야 하는 것은
사실은 어쩔 수 없는 나의 현실이다.
이를 인정해야 하는데
인정하기가 쉽지가 않다.
너무나 힘들다.
왜 이렇게 힘들까? 
사실 1년 쯤 아르바이트를 할 수도 있는 건데
나는 왜 그 시간이 이렇게 아까운 걸까? 
사실 나는 이 부분은 잘 모르겠다.
나도 나를 이해할 수 없는 부분 중의 하나이다. 

사실 남자친구와 그렇게 나쁘게 지내고 있는 것은 아니다.
내가 바라는 연애상과는 거리가 멀어서 그렇지
나름대로 괜찮은데.
내가 지나치게 비관적으로 생각하고 있긴 하다.
하지만 어떻게 제어가 잘 안 되는 것도 사실이다.


.
.






나도 나를 잘 모르겠다.
하지만 내가 힘들어하고 있다는 것만은 잘 알 것 같다.
그리고 나에게 뭔가를 해주고 싶다.
내가 너무 불쌍하다.
내가 나를 너무 혹사시키는 것 같다.
나를 좀 행복하게 해주고 싶다.
어떻게 하면 나를 행복하게 해줄 수 있을까? 


죽으면 될까? 
그러면 내가 좀 편안해질까? 
그런데 어차피 나는 지금 죽을만큼 힘들지는 않아서
죽지는 못할 것이다.
그리고 걸리는 게 너무 많아서 죽지도 못 해.
엄마도 동생도 친구도 남자친구도.
가진 게 많잖아.

있을 건 다 있는데
나는 왜 이렇게 불행한 걸까? 
단지 돈이 없어서,
그리고 빚 때문에 아르바트를 해야 해서 불행한 걸까? 
뭐지? 
뭐 때문이지? 
알 수가 없다.

어떻게 해야 알 수가 있을까? 
어떻게 해야 행복해질 수 있을까? 
궁금하다.
알 수 있으면 좋을 텐데.

내 마음이 문젠가? 
상황이 문제인가? 
둘 다 문제인가? 



아니면 내 성격이 문제일 수도 있고.




.
.




궁금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