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호차 감사제목들   감사
  hit : 1236 , 2015-02-06 10:39 (금)

좀 정리를 해야겠다 싶지.

내게 얼마나 감사한 일들이 일어났는지.


나는 1월 29일부로 

평범한 의무경찰 타격대원(보직은 소총수)에서

서장님의 출퇴근을 돕는 1호차 운전병이 되었다.

(1호차는 경찰들이 쓰는 무전용어로써 서장님이 타고 다니는 승용차를 의미한다.)




감사 제목들을 몇 개 나열해 보려 한다.



1. 소대생활에서 매우 자유로워졌다. 

(이제 어디간다고 보고하지 않아도 된다. 내 맘대로 소대를 들락날락 한다.)


2. 머리를 기를 수 있게 되었다. 

(군인이 머리를 마음대로 기를 수 있다니.)


3. 개인 핸드폰이 생겼다. 

(군인이 핸드폰을 쓸 수 있다니.

언제든지 부모님, 친구와 연락이 가능하다. 

친구는 나보고 군대 가 있는 것이 맞냐고 한다.)


4. 드라이브를 즐길 수 있다. 

(서장님을 퇴근시키고 돌아오는 길... 심부름 가는 길 등... 바깥 공기를 쐰다.

소대 생활을 하면 경찰서 밖을 한 발자국도 못 나간다.)


5. MP3를 자유롭게 듣는다.

(얼마 전, 차에 꼽는 USB형 MP3를 장만했는데

차 스피커가 얼마나 좋은지 나 혼자 크게 틀어놓고 달릴 때면 콘서트장에 와 있는 기분을 느낀다.)


6. 개인 시간이 어마어마하게 많아졌다.

(하루 세 번, 출근, 퇴근, 점심 시간 때만 아니면 모조리 다 나의 개인 시간이다.)


7. 나의 컴퓨터가 생겼다.

(이 개인 시간에는 나의 개인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다.

나도 경찰서의 모든 직원들처럼 개인 컴퓨터를 하나 지급받았다.)


8. 가끔 맛있는 간식을 얻어먹는다.

(서장님이 드시는 간식들을 나도 얻어먹을 때가 있는데 

내무반에서는 상상도 하지 못할 일이다.)


9. 의외의 인맥(?)이 많이 생긴다.

(12월에도 잠시 수습기간을 거치면서 느꼈던 거지만,

경찰 무궁화 두 개, 세 개짜리 과장, 계장들과 자주 이야기하고 친해지는 기회가 생긴다.

인맥이라는 단어를 별로 좋아하지도 않고 이 사람들이 내게 그닥 큰 도움은 안 되겠지만

장점으로 보자면 장점이 될 수 있다.)


10. 원하는 만큼 독서를 할 수 있다.

(책 읽는 것을 아주 좋아하는 나로써는 

질리도록 책을 읽을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이 생긴게 얼마나 감사한지...)


11. 출동을 나가지 않는다.

(타격대원들은 112로 신고전화가 들어오면 24시간 언제든 기동복으로 환복 후

그 접수지로 출동해야 한다. 하지만 나는 제외다.)


12. 규칙적인 수면 패턴을 가진다.

(타격대원들은 정문 보초 근무를 서게 되는데 거의 매일 같이 야간 근무가 들어가 있다. 

새벽 1시~4시, 4시~7시 근무라도 섰다 싶으면 그 날 숙면은 포기할 정도다.

하지만 나는 7시 기상, 22시 취침의 출근족으로써 규칙적인 생활 패턴을 가지게 되었다.)


13. 외출을 더 나간다.

(타격대원들은 올해부터 한 달에 외출을 3번 밖에 나가지 못한다.

하지만 나는 매주 일요일마다 외출을 꼬박꼬박 나갈 수 있게 되었다.

한 달에 4번씩... 길게 보면 얼마나 큰 이득이고 특권인가. 몇 번을 더 나가는 거야...)


14. 가끔 외식을 한다.

(소대 생활을 하면 하루 세끼 늘 구내식당 밥만을 먹어야 한다.

그런데 서장님이 과장들과 외식이라도 할라 치면 운전기사 메뉴도 꼭 끼워서 사주기 때문에

나는 본의 아니게 바깥 밥, 훨씬 비싼 밥을 많이 얻어 먹는다...)


15. 늘 사복을 입으며 다닌다.

(매일 같이 기동복, 근무복을 꺼내 입으며 질리기도 했고 귀찮았다.

그런데 나는 집에서처럼 사복을 입고 어디든 다닐 수 있다.)


16. 운동을 밤 시간에 할 수 있다.

(소대원들은 오후 6시에 저녁식사를 하고 8시가 청소시간인데 

그 두 시간 텀동안만 헬스장에 가서 운동을 할 수 있는 특이한 규칙이 있다.

저녁 먹자마자 운동을 할라니 속도 더부룩하고 여러모로 안 좋았었다. 

하지만 나는 이제 일과가 끝나면 밤 9시든, 10시든 자유로운 시간에 올라가서 운동할 수 있다.)


17. 정문 보초 근무를 서지 않는다.

(올 겨울 얼마나 추웠는지... 추운 날, 더운 날 밖에 서서 

마치 대형마트 주차장 알바마냥 똑같이 민원인 상대하며 시간을 축냈었던 정문 보초 근무를 접고

따뜻하고 아늑한 곳에서 나의 개인 활동을 영위할 수 있게 되었다.)


18.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할 수 있다.

(온수가 대략 밤 10시부터 나온다.

그런데 소대원들은 청소가 끝난 후 밤8시 반에 꼭 씻어야 하는 이상한 규칙이 있다.

그 때에는 미지근한 물 밖에 나오지 않아서 참 불만이 많았었다.

이제 나는 운동을 마치고 밤 10시쯤, 아니, 언제가 되었든 자유롭게 씻을 수 있다.)




일단 18개로 축약한다. 이외에도 세세하게 들어가면 정말 감사할 일들이 많다.

안 그래도 요즘 정문근무가 더 빡세졌다. 차 안 올 때 책도 못 보게 하고... 

두 시간, 세 시간씩 서서 멍하니 뭐하는 것인지... 힘들었었다.

거기다가 새벽 근무때 말 많은 선임이라도 옆에 있다 치면

그 사람과 세 시간동안 무슨 얘기를 주고 받아야 할지... 고민이 많았다.

거기다 선임이 몰래 뭐 시켜먹자고 하면, 돈 깨지는 건 시간문제였다.


이 일을 하면서 윗사람 모시는 일에 대해 많이 배우게 된다.

안 맞는 사람은 정말 안 맞을 수 있겠구나 싶기도 하지만...(서장이 워낙 히스테리가 심한 사람이어서)

멘탈만 강하고 눈치 좀만 덜 보면 아주 편하고 좋은 일이다.

그 외에도 공무원사회, 그 중에서도 이 경찰 계급사회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대강 파악이 가능하다.

재미 쏠쏠하다. 여기서 다 말하긴 싫지만...

그냥 다들 똑~같다.


그저 나는 이 일에 대해 특별히 원한 적도 없고,

또 특별히 애써 거부한 적도 없다.

그냥 나는 두 손 두 발 다 놓고 편하게 앉아있으면서 흘러들어오는 대로 이 보직을 맡았을 뿐이다.

원래 이 보직은 바로 내 윗선임이 맡기로 되어 있었다.

이 선임은 자차도 있고 운전경력도 많고, 꿈도 경찰이어서 거의 100% 내정이 확실시 되었었다.

그런데 이 선임이 여름에 갑자기 픽하고 쓰러지면서 그 소문이 경찰서내로 돌았고

결국 그 선임보다 운전경력도 적은 내가 이 일을 맡게 되었다.


사람 일은 모르는 것이다. 

나는 그저 감사하고 있다. 

이왕 이 곳에 떨어졌고, 이 일을 하며 군생활을 보내야 한다면 

즐겁고 재미있게, 감사하며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같은 부대원들과 비교해도 이렇게나 감사할 일들이 많은데

지금도 수 많은 곳에서 고생하고 있을 수 많은 육,해,공군 일반병들과 비교하면

나는 참 많이 편한 군생활을 만끽하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들은 눈 뜨면 보이는 것이 풀들과 흙밭이겠고... 

오늘도 취사병이 지어준 맛없는 밥을 먹으며 고된 훈련을 마쳤을 것이다.

어디 가서 군대 다녀왔다고 하지도 못하겠다.


그저 맡겨지는 일들은 열심히 하고

너무 신경쓰거나 스트레스 받지도 말고,

눈치도 그리 보지 말고 내 권리 찾을 건 내가 찾으면서,

그렇게 남은 1년 남짓을 보내려 한다.


언제 제대하나...헀는데 

벌써 9개월째다.


하나님께 감사드려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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