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의 역동   cinq.
  hit : 2320 , 2015-10-09 23:14 (금)


고등학교 때,
내가 제일 행복했던 순간은
기숙사 친구들과 밥을 먹으러 가기 전 새벽에,
학교 갈 준비를 모두 끝마치고
혼자서 학교 공원을 거닐 때였다.

그 때 나는 하루 중 가장 마음이 편했다.
다른 사람들이 있는 곳은
그 어디든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나무, 풀, 새, 벌레들이
나는 가장 편했던 것 같다.
왜냐면
자연은 나에 대해서 평가하지 않으니까.
나한테 뭐라고 하지도 안고
뭘 요구하지도 않는다.

지금 생각해보면
당시 내가 사람과의 관계를 극도로 제한했던 것은
정말 자존감이 낮았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얼마나 스스로를 싫어했으면
그렇게 사람들과 어울리는 걸 무서워했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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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그 때 가졌던 열등감 중,
가장 큰 것은 지금 생각해보면
'외모'였다.

성폭행이라는 큰 문제에 가려져 있었지만
학창 시절 나의 가장 큰 고민은
'찌질한 아이가 되는 것'이었다.

절대로 찌질해지고 싶지 않았다.
왜 거기에 그렇게 집착했었을까?

이 감정은 초등학교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4~5학년 때까지만 해도 나는 잘 나가는 아이였다.
반에서 인기도 제일 많았고,
힘도 권력(이라고 말하긴 웃기지만)도 가장 강했다.

그런데 6학년이 되면서
그 구도가 바뀌기 시작했다.
그 전에는 예쁜 아이보다는 활발하고 뭔가를 잘 하는 아이들이 인기가 많았지만
6학년이 되니 예쁜 아이들이 주류가 되었다.

예쁘고
잘 꾸미고
언니들에게 예쁨받는 아이들.

나는 절대 그런 타입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 무리에서 서서히 분리되어갔다.

나는 언니들에게 애교를 부리거나 예쁨을 받는 타입도 아니었고
오히려 불려가서 똑바로 하라는 소리를 듣는 쪽이었다.
인사도 제대로 안 하고
알랑거리지도 않고 하고 싶은 대로 하니
눈엣가시였을 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그 언니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든 나랑은 크게 상관 없지만
그 때의 내게 그것은 '미움 받는다'는 느낌으로 다가왔던 것 같다.
어쨌든 이 때 나는 
내가 '찌질하다'고 느꼈다.

옷도 잘 못 입고
얼굴도 못 생긴.
안경을 낀 데다가 사진만 찍으면 수염 때문에 인중이 시커멓게 나와서 예쁘지 않은.
한 번은 같이 다니던 친구들에게 배신을 당해서,
왕따인 애들과 같이 놀았던 적이 있었다.

그 때부터였던 것 같다.
찌질함에 대한 공포를 갖게 되었던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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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생이 되어서도 나는 그 찌질함에 대한 공포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이에 대한 회피 방어기제를 쓰기 시작했다.
'나는 친구를 조금만 사귈 거야.
많아봤자 인생에 도움이 안 되.'라고 생각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면서 몇몇의 친구들과만 어울려 놀았다.
사실 더 많은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두려움에서 비롯된 행동이었다.

하지만 어떻든 나의 작전은 성공했고
나는 생각이 깊고 진지하고 시크한 아이로 통했다.
더 이상 찌질하지 않아진 것이다.

나는 내 이미지에 나름 만족했고
그 껍데기 속에 숨어 살았다.


그렇게 나는 그 때부터 관계의 역동에서 벗어난 삶을 살았던 것이다.




.
.


나는 사실 더 인기가 많아지고 싶었고
더 잘 나가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 해서 창피했던 것이다.

이게 인간관계에 있어서 내 학창시절을 점령했던 감정.
이런 감정들이
아버지의 성폭력과 그로 인한 스트레스로 인한 우울감으로
제대로 다뤄지지 못하고 해소되지 못함으로써
응축되어버린 것,
이 아닐까 싶다.



어쩄든 나는 그런 찌질함에 대한 공포로
사람들로부터 거리를 두고 살았다.
차라리 그냥 미지의 사람인 것이
찌질한 사람인 것보다는 낫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사실 나의 이런 행동은 대학생이 되어서도 크게 변하지 않았다.
사람들의 공격으로부터 나를 지키는 가장 큰 무기는
그들에게 거리를 두는 것이다.

내가 불편할 수록,
사람들은 나에게 막대할 수 없게 된다.

하지만 막대한 희생이 따른다.
관계의 역동에 속하지 못한다는 것.
즉, 
싸우고
화해하고
섭섭해하고
서로 푸는 
그런 일련의 과정을 겪을 기회가 없다는 것이다.

나는 늘,
그저 그런 관계를 영유한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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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그런 관계의 역동에 속해봐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든다.
찌질하면 좀 어떤가.
그렇게 기를 쓰고 멋있으려고,
깨끗하고 깔끔하고 세련되려고 할 필요 없어.

그건 초, 중, 고등학생 하나의 욕구야.
사촌언니처럼 예뻐지고 싶고
일진이 되어 사람들을 주름잡고 싶은
사춘기 청소년 시절의 욕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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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어떻게 관계를 맺는지 보면서
나도 관계의 역동 속에 들어가는 연습을
슬슬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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