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힘든 시기는 가고 있다.
일이 끝나고 복학을 하게 되었으니
이제 한동안 나의 우울은 찾아오지 않을 것이다.
기분도 좋아질 것이고
주변에 사람들도 많아질 것이고
그러면 오빠와 조금 더 잘 지낼 수 있을 것이다.
자존감도 일시적으로나마 올라갈 것이며
내 주장도 분명히 할 수 있을 테고
기분이 좋으니 내 감정 표현도 더 자유롭게 할 수 있을 테고.
하지만 마음에 걸리는 점은
나는 3월부터 본격적으로 집단 상담이나
작은 말하기 등 성폭력 치유를 시작할 것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아버지에 대한 고소도 하려고 한다.
그런데 이러한 과정들을 남자친구와 함께 해나갈 수 있을까?
함께 하지 않는다면 남자친구 몰래 할 수 있을까?
내 남자친구가 이런 일들을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일까?
같이 감당할 정도로 나를 사랑하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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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힘든 것은
내 모든 감정이 1차적으로 남자친구에게 흘러갈 것이라는 점이다.
나는 미친듯이 화내고 미친 듯이 울 것이다.
그 감정들을 오빠가 감당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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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들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헤어지려는 것이 가장 크다, 솔직히 말하면.
이런 저런 불평불만, 섭섭함
물론 다 있는 것이 맞지만
조율, 을 포기하고
오빠와 헤어지려고 하는 것은
이런 이유가 가장 크다.
나로 인해 상처 입을 사람을 일찍히 대피시키고 싶은 마음.
그리고 나는 편안히 괴롭고 싶은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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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지,
나는 오빠가 참 좋아.
무지무지 좋아.
그러니까 잘가.
멀찍이 있어.
상처받지 말고.
랄까,
-
오빠는 절대로 이해 못하겠지만.
나는 절대로 오빠한테 이해받지 못하겠지만.
이걸로 됐다.
나는 처음으로 남자친구를 사귀어봤다.
서로 사랑도 하고
애틋하게 통화도 하고
데이트도 하고
섹스도 하고.
정말 정말 좋았다.
오빠에게 정말 정말 감사하다.
나를 이렇게 사랑해준 오빠가 정말 정말 고맙다.
물론 오빠는 나를 괴롭게도 했지만,
세상에 나를 괴롭게 한 사람은 많다.
그러나 나를 한 순간이라도 정말로 사랑해준 사람은 없다.
오빠는 그래줬다.
나를 안아주고, 뽀뽀해주고, 키스해주고
사랑한다고 이야기해주었다.
아침에 일어나서는
눈도 못뜨고 비몽사몽하면서
'사랑해'라고 중얼 거리는 오빠가 나는 정말로 좋았다.
'사랑해'
'나도'
'고마워'
이런 말들이 나는 너무나 좋았다.
신기한 경험이었다.
.
.
그러나 나는 이런 고마움들을 다 표현하지는 않을 거야.
헤어지는 마당에 이런 감상적인 말들을 너에게 한다는 건
이기적인 것이겠지.
나야 뭐 한껏 이별의 분위기를 낼 수는 있겠지만
너는 쉽게 나를 잊을 수 없을 테니까.
깔끔하게 헤어지자.
그리고 너는 지금까지 만나왔던 것처럼
이렇게 힘든 일 없는 예쁜 여자 만나서
행복하게 연애했으면 좋겠다.
응응
그랬으면 좋겠어 우리 오빠야.
.
.
그 어느 때보다도 슬프다.
새로운 종류의 슬픔이다.
지금까지의 슬픔과는 다르다.
새로운 종류의 고통이랄까.
이런 느낌으로 아픈 것은 처음이다.
아릿,
하달까.
좋아해 오빠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