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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여름
 25세 하림의 대주주 기사를 읽고.   합니다.
조회: 2641 , 2017-05-31 12:55



우리나라에선 창업주가 그룹, 계열사 시스템을 구축한 뒤에는 당연히 가업을 승계한다.
그래서 남들이 다 '당연하게'하는 일을 하지 않은 유일한 박사가 존경받는 것이다.
그러나 이 것이야 말로 '다수가 하는 것', '일반적인 것', '당연한 것'이 '잘못된 것'일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사례다.

창업주가 인생을 바쳐서 기업을 일으켰다는 것을 부인할 수는 없다.
이미 구멍가게 만들고 있는 나도 그렇게 살고 있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 것으로 예상되는 걸 보면, 모든 창업주들이 비슷할 것이다.
눈을 뜨나 감으나 회사 생각이 멈추질 않는다. 일에 집중하려고 노력할 필요가 없다. 모든 생각의 시작과 끝에 '회사'가 있기 때문이다. 내 삶에서는 너무 당연한 일이다.

좋은 제품/서비스를 만들어내서 고객에겐 더 좋은 경험을, 직원에겐 더 좋은 일자리를 제공하기 위해 끊임없이 고민하는 게 내 일이다.
그러나 이건 내가 좋아서, 내가 행복해서 하는 '이기적 행위'일 뿐이지 봉사활동이 아니다. 부를 쌓게될지 빚을 쌓게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실력 뿐만아니라 '운'도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하루하루 치열한 삶 속에서 나는 '결과와 무관하게 즐거우니까 한다.'는 마음을 잃지 않기 위해 노력할뿐이다.

이렇게 앞만보고 한 20년 부지런히 가다가 되돌아보니 어느덧 내가 거대한 그룹을 이끌고 있고, 장성한 자녀도 있다고 해보자. 그럼, 그 자녀에게 이 기업을 '가업승계'하는 게 자연스러운가? 바람직한가?
그렇지 않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아무리 내가 지분이 100%인 회사라고 하더라도 '내 회사'가 아니기 때문이다.
수많은 외부고객(소비자)과 내부고객(임직원)의 이해가 얽혀 있는 '우리 회사'다. 게다가 기업은 사회에서 특정 역할을 하고 있을 것이니 '우리 사회의 회사'가 될 것이다.

개인이든 기업이든 본인의 사회적인 역할을 잘 해내지 못할 때 존재 이유를 잃을 수 있다. 
'인간'은 사회적인 역할을 잃은 '개인'이라 할지라도 존재 자체를 부정당해선 안 된다. (안타깝게도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사실상 부정당하는 게 현실이지만.....)
그러나 가상의 '법인'은 사회에서 '기업'으로서의 역할을 잃으면 존재 이유가 없다. 없어지는 게 마땅하다.

그렇다면, 내가 평생을 바쳐서 만든 기업이 사회에서의 역할을 잃고 사라지는 것을 내가 바랄까? 소비자와 임직원들이 바랄까? 전혀 그렇지 않을 것이다.
부모가 자식을 본인의 소유물로 여기고 분별력 없이 자식의 인생에 사사건건 깊게 개입하고, 심지어 결혼 상대도 마음대로 정해서 억지로 결혼을 시킨다면 어떻겠는가.
머지 않은 과거에 우리 나라에서도 그런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시간은 흐르고 세상은 변한다. 현 사회에서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행위로 여겨진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과거 창업주들이 그렇게 해왔던 것은 당시에는 나름 합리적인 선택이었을 것이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큰 것은 당시 국민 전체의 교육 수준이 낮은 상황에서 창업주의 자녀들은 어렸을 때부터 고급 교육을 받아왔다.
그게 실제 역량으로 이어지든 그렇지 않든 자타공인 '앨리트'가 될 수 있었다. 그 힘으로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 사회에서는 맞지 않는 이야기다. 구멍가게 수준의 우리 회사만 봐도 이미 우리 임직원들도 나보다 더 유능한 경우가 많다.
그리고 그룹을 구축하여 현재의 대기업 수준이 되었을 때는, 그 역사를 함께한 직원들이 누구보다도 우리 그룹의 속사정도 잘 알고 있을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내 생물학적인 DNA만 물려받았을 뿐 전혀 관련없는 사람이 내 정신적인 DNA를 물려받은 기업을 물려받아야할 정당성은 없다.
굳이 부를 대물림 해주고 싶으면 (이 또한 자녀의 행복을 최우선 가치로 놓고 생각해보면 썩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하지만) 주식을 팔아서 돈으로 쥐어주면 될 일이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세상도 변하고 나도 변한다. 이미 끼니 걱정에서 멀어진 지금, 나는 친구들과 공감하기 위해 과거의 나를 불러와야 한다.
계급이 존재를 규정한다는 막스의 말을 부정하려고 노력하지만 부정할 수는 없다. 노력을 할 수 있을 뿐이다. 인간은 환경에 적응하는 동물이기 때문이다. 
개구리는 본인이 올챙이 때 육지를 두려워했던 '기억'이 있을 뿐, 올챙이와 동일한 강도로 그 두려움을 '공감'할 수 없다.
겪어온 모든 첫경험에 대한 기대? 설레임? 두려움? 등을 기억은 할 수만 있을 뿐, 그 상황에 당면한 당사자들의 마음을 있는 그대로 '공감'할 수는 없다.

가업승계. 아직 내가 미혼에 아이도 없기 때문에 찝찝함 하나없이 이렇게 당당하게 떠들 수 있는 것일 수 있다. 안다. 그래서 지금 기록해놓는 것이다.
사회가 진보하기 위해선 젊은이들의 말을 들어야 한다. 남의 조언을 잘 듣기는 해도 납득되지 않으면 절대 따르지 않는 내가 '과거의 내 조언'은 어떻게 받아들일지 궁금하다.
전쟁터에 나온 지 4년이 지났다. 이번에 낸 종합소득세가 4년 전에 1년 동안 벌었던 금액과 같다. 부끄러운줄도 모르고 '벌어서 남는 게 없다'고 칭얼대는 입장이 됐다.
노동소득이 자본소득을 따라갈 수 없는 사회 구조. 자본이 있을 뿐 자본가는 없다. 모든 사람은 노동자라는 사실을 잊지 않아야 한다.

갈 길이 멀다.











http://v.media.daum.net/v/20170531112814183

봄여름   20.01.16

불과 30개월 전 글인데 이렇게 불편하다니...
노동을 신성시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마치 현 정부의 관점처럼.
지난 2년 반 사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가.
내 포지션이 이다지도 많이 달라졌단 말인가.
난 되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것인가.
부지불식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