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向月
 20190115   현실체험기
조회: 1974 , 2019-01-15 23:29

 마감일에 맞춰 기사 정리를 한다.

 그 와중에 취재요청 전화가 오고, 

 사무실로 도의원과 새마을회 사무국장님이 찾아오고.

 인사를 나누고 시덥잖은 농담을 주고 받고
 또 핫한 정보를 주고, 또 받고. 기록하고.

 

 추운 겨울이다, 메일에 온통 성금기탁한 보도자료가 가득하다.

 성금과 물품, 따뜻한 마음, 이웃사랑 나눔.

 

 신년이라지만 광고가 없다.

 언론사는 광고로 먹고 사는데. 위에서 더이상 광고를 주지 않겠다 한다.

 언론사 길들이기 돌입한건가.

 지역언론이 해마다 진행하는 문화예술사업 예산 또한 전액 삭감되었다가

 다시 상임위에서 살려냈단다. 고마워하라는건지.. 씨바, 안해도 된다. 더러워서.

 

 타언론사가 3억이나 받아처먹고 행사를 개판으로 진행하고

 그 덕에 지역의 모든 언론사가 싸그리 욕을 먹고

 다함께 예산이 삭감됐다가 살렸다고.

 씨바. 나도 세금낸다, 새키들아.

 그 3억 안에 내가 낸 세금도 있을거라고. 확마.


 시청의 인사 문제, 경찰서장이 새로 왔다고 인사하러 가자는 선배.

 다 집어치우고 그냥 눈감고 잠들고싶다.




 원래 칼퇴근을 잘 하지 않는데다 오늘은 기사 마감을 해야되는데.

 그분이 짬이 났다고 했다.

 퇴근 후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공방으로 향했다.

 나무냄새. 불냄새. 먼지냄새. 풀냄새

 

 새로 온 나무들이 있다고 보여준다.

 잘 모르는 내가 보기에도 특이하다.

 나이테는 아니고 물결무늬가 있고, 연필로 그린듯한 무늬도 있고.

 이 나무 단면에 오일을 바르면 바다나 강가의 물결이 일렁일렁 움직이는듯 보인다고 한다.

 숨겨져있던 무늬가 나타난다고.

 신기해서 한참을 바라봤다. 나무가 살아온 일생,

 자라면서 나이테가 늘어가고, 또 바람이 많이 불었던지, 비가 많이 왔던지 하는 그런 나무의 삶이

 그 단면에 담겨있었다.

 새카만 나무가 있길래, 뭐에요? 라고 여쭤봤더니 흑단나무란다.


 현미와 엄나무를 넣고 끓인 물을 홀짝이며 난로 앞에 마주보고 앉는다.

 심장은 괜찮은지, 숨을 잘 쉬는지 묻는다.

 머쓱해하며 괜찮다고 답한다.

 답하다보니 트라우마까지 이야기하게 된다.

 

 낯설다고. 타인이 나를 안는다는 것이. 아직은 낯설다고.

 내가 어릴때 성폭행 피해자였던 사실을 말하고,

 순결의식이라던지 그런 가치관에서 잠시 혼란스러워 했었으며

 나아지고 있긴 한데, 아직은 낯설고 긴장한다고.

 지난번 선생님과 키스를 한 후에도, 그런 이유로, 그래서 더 떨리고 숨이 차다고 말한다.

 말하면서도 이렇게 쉽게, 트라우마에 대해 설명하는 내가 놀라웠다.

 

 지긋이 나를 바라보며 그럼 천천히 다가가야겠네. 조심스럽게.

 차차 나아지고 있다니 다행이긴하다. 그래도 내가 다 낫게 해줘야겠네. 하고 웃는다.

 그런 터치나 접촉들이 싫은건 아니냐고 묻는다.

 싫다면요?

 그럼 안해야지.

 하하하하하 하고 웃는다.

 싫진 않아요. 단지 제가 긴장해서 숨이 차고 공황이 올때, 놀라실까봐.

 내 마음은 그게 아닌데, 제 반응때문에 놀라시거나 당황하실까봐요.

 

 공방 난로 옆.

 나무냄새 불냄새 가득한데,

 그분이 나를 꼭 끌어안아주셨다.

 나는 또  호흡이 흐트러지는걸 느끼며 덩달아 긴장하는데

 귓가에서 괜찮아. 편안하게 내쉬어.

 등을 쓰다듬고 머리를 쓰다듬고 토닥토닥.

 

 조심스럽다.

 한참 나이가 많은분이라 더 조심스럽고.

 그러면서 배울 것이 많아 더 흥미롭고 즐겁다.

 대화를 하면 할 수록,

 내가 가려고 했던 길, 포기했던 길들을 앞서 걸었던 분이라

 영향력이 상당하다. 물론, 긍정적인 부분으로.



 다음에 뵙게 될 때는

 안나푸르나 이야기를 해달라고 해야겠다.

 그 사진 속의 물소 뿔 같은건 정말 물소뿔인지, 아니면 다른 동물의 뿔인지.

 히말라야는 어땠는지. 트래킹은 어땠는지.

 눈 밭에서 얼마나 헤매셨는지, 그리고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얻으셨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