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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서 - 사람에게서 구하라 (구본형)  
조회: 2673 , 2011-12-29 14:09
■ 아궁이의 본질에 대한 이해 (손빈 vs 제갈량)

중국춘추전국시대의 최고의 병법가로  모두 세 명을 꼽을 수 있다. 첫 번째가 손자라고 알려진 손무다. 그리고 두 번째 인물이 손무의 후손인 손빈이며, 나머지 하나가 오기다. 다음 이야기는 이들 중 한 사람인 손빈에 얽힌 이야기다.

손빈은 방연이라는 사람과 함께 병법을 공부했다. 방연은 공부를 마치고 위나라의 장군이 되었다. 그는 자신이 손빈보다 못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를 모함하여 두 다리를 자르고 얼굴에 먹물로 글자를 새겨 숨어 살게 만들었다. 그 후 손빈은 제나라로 가 당시 제나라의 장군이었던 전기의 빈객이 되었다.

역사는 기구한 악연으로 얽힌 손빈과 방연을 전장에서 서로 적이 되어 만나게 하였다. 손빈은 장군 전기에게 다음과 같이 제안했다.

"위나라 군사는 사납고 용감합니다. 그래서 늘 제나라 군사를 겁쟁이라고 부릅니다. 우리 제나라 군사가 위나라 군사와 만나 싸울 때 후퇴하게 하십시오. 후퇴할 때, 첫날에는 10만 개, 다음 날에는 5만 개, 그리고 그 다음 날에는 3만 개의 아궁이를 만들게 하십시오."

위나라 장수 방연은 아궁이 수가 줄어든 것을 보고 비웃었다. 그의 추측대로 제나라의 겁쟁이 병사들이 퇴각하면서 이미 절반이상 도망가버렸다고 믿으면서 마음 놓고 추격했다. 손빈은 복병을 숨겨 두었고, 준비 없이 추격하는 위나라 군대를 섬멸했다.

방연은 싸움에 지자 "결국 어린애 같은 놈의 이름을 천하에 떨치게 만들고 말았구나"라고 크게 탄식하며 자결했다. 방연의 예측대로 손빈의 이름은 이일로 인해 천하에 알려지게 되었고, 그의 병법이 후세까지 전해지게 되었다. 사마천의 『사기』 열전에 수록된, 아주 오래 전 이야기다.

이 이야기가 전해진 후 수백 년이 지나 이 고사와 얽힌 또 하나의 유명한 이야기가 전해진다. 『삼국지』속의 특별한 캐릭터로 읽히는 제갈공명이 사마의 중달과 싸울 때 이 이야기를 거꾸로 사용하여 사마의를 놀리는 장면이 나온다.

유비가 죽고 난 후 공명은 그 유명한 눈물의 「출사표」를 써 놓고 여러 차례 중국의 중앙부를 향애 진출했다. 인구가 적고 한 쪽으로 치우쳐 있는 촉으로서는 중앙으로의 진출이 미래의 활로였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강자를 상대로 하는 싸움은 늘 어려웠다. 다행히 기산에서의 싸움은 잘 풀려 갔다.

그러자 사마의는 사람을 풀어 촉의 조정을 모함하게 하여 공명이 귀환하도록 계략을 짰다. 모함은 적중했다. 전세가 좋을 때 귀환해야 하는 공명으로서는 아쉬운 기회였지만,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이제 병사를 잃지 않고 매끄럽게 퇴각하는 일이 남아 있었다.

촉군이 퇴각할 때그 뒤를 급습하여 궤멸하려 했던 사마의를 속이는 방법으로 공명이 썼던 전략은, 물러나면서 아궁이 수를 늘리는 방법이었다. 주위 사람들이 물어 보았다.
"과거에 손빈이 위나라 방연을 칠 때, 퇴각하면서 아궁이 수를 줄였던 적은 있습니다. 어찌하여 아궁이 수를 늘리라고 하십니까?"

공명이 대답했다.
"사마의는 군사를 잘 부리는 사람이다. 우리가 물러나면 반드시 우리를 쫓을 것이지만, 속으로 복병이 있을까 의심할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물러난 후 아궁이 수를 셀 것이다. 아구이 수가 늘어나면 우리가 정말 물러난 것인지, 그렇지 않은 것인지 판단하기 어려울 것이다. 따라서 함부로 쫓지 못할 것이다. 그 사이 우리가 천천히 물러나면 조금도 군사를 잃지 않고 퇴각할 수 있다."

실제로 사마의는 아궁이 수가 늘어난 것을 보고 공명의 복병을 두려워하여 뒤쫓지 못했다.
중국 역사를 통틀어 가장 현명한 인물 중의 하나로 기술되는 제갈공명은 과거의 지식과 이야기를 어떻게 재해석해야 할지 알고 있었다. 그는 '손빈의 아궁이' 수에 갇히지 않았다. 그 대신 아궁이의 의미를 이해하고 있었다. .....

손빈은 적의 자만심을 이용하여 공격에 성공했고, 공명은 적의 의구심을 증폭시켜 후퇴에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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