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추리소설을 거꾸로 읽으려는 경향이 있다.
.
.
얼마 전에 페이스북에서 보게 된
꽤나 좋은 글이 있었다.
내 친구가 아니라
사랑과 관련된 글을 주로 포스팅하는
어떤 사람의 글이었다.
재지 말고
계산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사랑하라는 이야기.
결혼을 전제로 사랑하지 말라고.
누가
추리소설을 뒤에서부터 읽냐고.
.
.
순간 무릎을 쳤다.
나 또한 그랬기 때문이다.
있는 그대로의 오빠와 나를 보지 못하고
'연인이 되었으니'
그에 걸맞는 행동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싸우면 안 되고, 오래 가야 한다고 생각해서
내 속마음을 더 감췄었고 계산했었다.
비단 연애 뿐만이 아니다.
나는 삶의 전반에 걸쳐
이러한 태도를 갖고 있다.
지금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는 일을 계획하려는.
눈 앞에 닥친 현실을 생각하다가도
그게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져
마침내 내가 정신을 차렸을 때
나는 이미 몇 년 뒤에 가닿아 있다.
그러다보면
결국은 머리가 복잡해져서
처음 생각을 시작했던 문제의 지점과 관련해서는
아무런 결론도 내리지 못하고 마는 것이다.
.
.
내 생에서
내가 가장 벗어버리고 싶은
태도였다.
결과부터 생각하고
과정의 한 걸음 한 걸음에 충실하지 못하는 것.
주변에 흩어져 있는 모든 퍼즐 조각들을 죄다 끌어와서는
빨리 맞춰버리고 싶다며 안절부절 못하는 것.
한 꺼번에 여러 가지를 맞출 수 있을 리가 없는데.
집중해서 하나를 맞추고 나서야
그 다음 조각을 맞출 수 있는 건데.
나는 조각을 하나 손에 들고 있다가
그것을 판에 끼워넣기도 전에
그럼 그 다음은 이건가? 하고 다른 조각을 집어들고
그 다음엔 이거
그 다음엔 또 이거
이렇게 조각들만 잔뜩 손에 들고
나중에는 이걸 다 언제 맞추지,
하며 망연자실하고 마는
그런 삶의 자세를 갖고 있는 것이다.
.
.
그래서
이제는 그러지 않아야겠다고 생각했다.
하나씩 차근차근
해나가야겠다고.
나는 아직 어리고 젊고
시간은 많으니
조급해하지 않겠다고.
마치 시험문제를 풀듯이.
1,2,3 번 문제를 한꺼번에 풀 수는 없다.
어떤 문제를 먼저 풀든
어쨌든 한 번에 한 문제씩 풀어야 하는 것이다.
지금 내가 풀기로 결정한 이 문제를 다 풀고 나서
다음 문제를 풀어야만 하는 것이다.
조금 고민해보다가 안 된다고 넘어가고
조금 끄적이다가 안 된다고 넘어가고
그래서야 문제를 다 풀 수가 없다.
그러니
하나의 문제를 잡았다면
거기에만 집중하자.
하나의 조각을 집어 들었다면
그 조각을 맞추는 데에만 집중하자.
다른 문제는 잊는다.
다른 조각은 잊는다.
중요한 것은 지금 내가 잡은 문제
지금 내 손에 있는 조각이다.
주변은
잊는다.
.
.
지금 내가 잡은 문제
내 손 안의 조각은
학자금 대출.
갚아야 한다.
550만 원 가량이 남았는데
이걸 갚아야 어떻게 내년에 복학하든지
말든지 한다.
그러니 다른 생각은 전혀 하지 말고
미래에 대한 불안
내년은 어떻게 보낼까
앞으로 뭘 공부할까
그런 거 하나도 생각하지 말고
그런 건 어차피 이걸 갚아야지만 의미가 있는 거니까
이걸 갚는 것만 생각한다.
밤낮으로 투잡을 뛰어볼까 한다.
그러면 한 달에 180 정도는 벌 수 있지 않을까.
모자라면 주말에도 일을 하고.
딱 3개월만 그렇게
나 죽었소,
하고 일을 해보려 한다.
주변에도 도움을 조금 청해보고.
그렇게 해서 깔끔하게 돈을 갚고
그 다음에 어떻게 살 지 생각하고 싶다.
지금 이 돈을 안고서는
미래에 대한 어떤 그림을 그리든
좌초될 뿐이다.
.
.
인생(삶) 영역 시험
1번 문제
'학자금 대출 550만원 갚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