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1 │ 미정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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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 "어. 왜?" "엄만... 언제 돌아가셨어?" "은하야.. 아빠랑 엄마얘긴 안하기로 약속했잖아." "궁금해.. 왜 우린 제사도 안해?" "계속 그런 얘기하면 아빠 화낸다." 역시... 외투를 걸쳐 입으시고는 나가십니다. 왜.. 아빤 엄마 얘길 싫어하는 건지.. 어쨋든 저도.. 학교로 향합니다. 반장이니까.. 일찍가야 합니다. "은하야~ 그 말 들었어?" "뭐?" "우리 학교에 전학 온 남자애 진짜 멋지데." "은하한테 그런 말 해봤자 뭐해? 쟤 첫사랑은 교과서야." 친구들은 절 이렇게 평가하곤 했습니다. 공부가 좋은 건 아니었습니다. 제 나이의 여자아이가 공부를 좋아하기란 힘들죠.. 그치만 공부란거.. 하면 편했습니다. 아무 생각도 안나니까요. 수학공식 하나 외우고 있으면 엄마 얼굴 궁금했던거 다 사라지고 영어단어 하나 외우고 있으면 어두운 집이 영어 철자로 가려졌거든요. 어느새 발걸음이 매점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친구들이랑 내기를 했거든요. 전학 온 남자애한테 말걸기. 물론 저도 그 남자애가 궁금했습니다. 코는 어떻게 생겼나.. 키는 얼마나 되나.. "야! 유은석! 괜찮아?" 재밌네요.. 유은석.. 유은하.. 제 이름이랑 한자 빼고 똑같습니다. 저멀리 코피를 흘리고 서있는 한 멀쑥한 남학생이 보였습니다. "은하야! 너.. 코피.." 제가.. 이런 사람인 줄 몰랐습니다. 왜 그런 사람있잖아요 다른 사람 피를 보면 기절한다거나.. 저는 같이 흘리는 타입인가봐요. 머리가 어질어질 하고.. 정신이 이상했습니다. 무언가로 머리를 세게 맞은 듯한 그런 느낌.. 코피가 흘러 제 흰색 블라우스를 적셨습니다. "너 뭐하니? 모자라는 거야?" 아까 코피를 흘리던 멀쑥한 남학생이 휴지로 코를 막고 어느새 제 앞에 서있었습니다. 코피를 흘리면서도 가만히 서 있었던 제가.. 꽤나 멍청해보였나봅니다. "닦어.. 좀." 그러면서 저에게 자신의 피를 닦았던 휴지를 건내줍니다. 왜 보통.. 드라마나 영화에선 이럴 때 손수건을 건내줘야 되는데.. 황당했지만.. 그 아이의 약간은 지저분한 호의가 그리 싫지만은 않았습니다. "고마워." 전 피가 묻지 않은 쪽으로 코를 막았습니다. 그 아인 절 한번 돌아보고는 획 나가버렸습니다. 매점 한쪽 구석을 보니 의자가 여러개 쓰러져 있었습니다. 주위에 수근거리는 말을 들어보니 우리 학교의 일명 일진이라는 남학생들이 시비를 걸었나봐요. 그럼.. 여러명이서 한명과 싸웠단 말인데.. 멋있었습니다. 그 아인 코피가 다였지만.. 의자 사이로 쓰러져 있던 불량스러운 남학생 3명이 생각났거든요. 그 멀쑥한 아이가 싸움을 잘하나봐요. 어찌됐건 내기에는 제가 이겼네요. 말 시켰잖아요.. 내기의 승자에겐 뭐가 돌아오냐구요? 저희끼리 정한 건데요.. 그날 야간 자율학습을 빼주는거예요. 나머지 3명이 선생님께 얘기하고 연기를 시작하는거죠. '선생님. 은하가 아파요' '쓰러질 것 같아요.' '보내주는 게 좋을 것 같은데요?' 이렇게 여러명이 달려들면 담임선생님도 두 손 드신다는걸 잘 알고 있었거든요. 근데 제가 이기면 별 의미가 없어요. 전.. 야간자율학습을 빠지지 않으니까요. 집에 가면 뭐해요.. 벨 누르고 '은하예요~' 말하고 싶지만.. 제가 열쇠로 열고 들어갑니다. 그리고 밥을 꺼내 먹죠. 아빠가 올 때까지 기다리는 그 시간은 정말 무서워요. 귀신이나 도둑 같은게 무서운건 아니지만.. 혼자 있을 때 집 안에 흐르는 적막. 그건 느껴보지 못한 사람은 이해할 수 없는 거예요. 그런데 이 날 만큼은 친구들이 강하게 나옵니다. "은하 너~ 오늘은 가!" "왜?" "그래. 너 때매 우리의 룰이 계속 깨지잖아." "됐어. 그럼 소영이가 이긴걸로 쳐. 됐지?" "안돼. 한번만 빠져라." "왜 그렇게 나한테 빠지라는 건데?" ".........." "은하야.. 솔직히 걱정돼. 너 요즘 공부 무진장 열심히 하지?" "그래. 너.. 우리가 쫌 있음 고3 되는거 알아. 근데 너 오늘 코피 흘리는 모습은 영 아니었어." "좀 쉬어 은하야.." 이렇게 친구들이 걱정해 주다니.. 기쁩니다. 근데 전 친구들의 꿍꿍이 속을 다 알아요. 제가 가면 떠드는 사람 명단 작성자가 없어지잖아요. 쟤들은 우리반에서 제일 목소리가 큰 애들인데.. 그렇겠죠. 다 알지만.. 그래도 이런 친구들이 있어 기뻤습니다. "오늘만이야. 대신.. 많이 떠들진 마." "오케이~" 결국 전.. 정규수업만 마친 채 집으로 향했습니다. 해를 보며 하교 하다니.. 토요일도 아닌 날에.. 어쨋든 약간은 들뜹니다. 그 때 교문 앞에 버려진 자전거가 보였습니다. 자전거.. 갑자기 너무 타고 싶었습니다. 저걸 타고 아무 곳이나.. 가고 싶었습니다. 탔습니다.. 자전거... 엄마랑 찍은 사진은 아빠가 다 버렸지만.. 단 하나.. 고모집에서 발견한 사진이 있었습니다. 그 사진속에는 엄마와 고모가 앞 바구니에 갓난아기인 저와 제 사촌동생을 태우고 자전거에 앉아있는 모습이 있었습니다. 제가 본 엄마 모습은 그 사진 뿐이라.. 엄마와 자전거는 어느새 제 머리속에 함께 했습니다. 어느 새 눈물이 고였습니다. "야! 거기서!" 그 때 누군가의 소리가 들렸습니다. 전.. 본능적으로 자전거를 세웠습니다. 그 사람은 저를 번쩍 들어 땅에 내려 놓습니다. 그 순간 눈에 고여 있던 눈물이 뺨 위로 흘러내렸습니다. "이런.. 훔쳐간 사람이 울면 어쩌자는거야?" 훔쳐간..? 주인이 있는 자전거 였나봅니다. 전 화가 났습니다. 자기 자전거면서 열쇠도 안 채우고.. 그리고 세워둔 것도 아니고.. 버린 것 처럼 눕혀 놨으면서.. "훔쳐갔다니요? 자기 자전거면 그렇게 내버려둬요?" "자기..? 너 나랑 사귀니? 이제 보니까.. 아까 걔 구나.. 멍한.." 이런.. 자세히 보니까 아까 그 코피 흘리던 아이 입니다. "너 아까 그.. 코피.. 더러운 휴지.." 이런.. 더럽다는 말을 해버렸습니다. 겁났습니다. 나름대로 신경써준 건데 제가 더럽다고 해버렸으니.. "난 니가 진짜 그걸로 닦을 줄 몰랐어." 제가.. 실수했네요. 가만히 보니까 저 아인.. 삐딱한 성격을 가진 것 같았습니다. 말끝마다 시비조 였거든요. "언제까지 울고 서 있을꺼야?" 제가 계속 눈물을 흘리고 있었나봅니다. 전 한번 울면 잘 안그치거든요.. 오죽하면 별명이 수도꼭지예요. "눈 크면 눈물샘이 크다더니 맞나보네." "난 그런말 못들어봤어." "방금 들었잖아." 역시.. 삐딱한 아이입니다. "타라." ".....?" "자전거 타고 싶어서 그런거 훔친거 아니었어?" "훔친 거 아니야. 그리고 너 나 언제봤다고 이렇게 막 대하는 거야? 난 너같은 애 우리 학교에서 본적없어." "전학생 유은석이야. 내가 궁금하면 빨리 물어보지 그랬어?" "........." "너.. 나 좋아하니?" "아니! 난 싸움 잘하는 사람 좋아해." 제가 왜 이 말을 했었는지.. 그당시 순정만화에 나오는 남자주인공들이 제 이상형이었습니다. 키 크고 예쁘장한 외모에 싸움도 잘하고 공부도 잘하는.. 팔방미인 꽃미남이었습니다. 가만히 보니까 이 아이.. 얼굴이 예쁘게 생겼습니다. 긴 속눈썹이 아슬아슬하게 보여주는 눈동자.. 혼열으로 착각할 정도의 콧날.. 얇고 붉은 입술.. 키도 컸습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아까.. 싸움도 잘하는 아이였습니다. "그만 훑어보고 타. 안탈꺼면 나 간다." "........내가... 왜 타니?" "알았어. 그리고 너 그거 알아둬. 나 싸움 잘해." 이러고는 자전거를 타고 가버립니다. 멍청한 여학생, 더러운 남학생. 서로 이상한 첫인상을 가지게 된 사이였지만.. 가슴이 뛰고 이상합니다. 삐딱한 말투에 내려보는 듯한 눈이 대들고 싶지만 밉지 않았습니다. 그게.. 저희의 첫만남이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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