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4 │ 미정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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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이제 일주일만 있으면 방학이다!" "그래도 우리는 학교 오잖아." "꼭 반장티를 내요.. 알어. 안다고." 벌써 방학이 일주일 뒤로 다가왔습니다. 이제 내년이면 고3인데.. 공부걱정이 앞섰습니다. 유은석.. 갑자기 유은석의 성적이 궁금했습니다. 왠지.. 잘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그날 솔잎으로 제 손가락을 따 줬던 이후로 그 아이를 못봤습니다. 식당에도 없고 하교길에도 없었습니다. 그나저나 그 우스운 광경을 연출했던 이후 전.. 학교에서의 이미지가 많이 바뀌게 되었습니다. 그 전의 차갑던 이미지가 많이 녹았다나봐요. 물론 친구들의 예쁘게 포장된 말이었죠. 저와 그 아이가 그렇고 그런 사이라고 소문이 났나봅니다. 어딜 가든 듣고 싶지 않아도 그런 내용의 수근거림이 제 귀로 들어왔으니까요. 유은석.. 그 아인 외계인 같습니다. 갑자기 나타나서 날 화나게 만들었다가 날 또 웃게 만들고.. 싫어졌을 땐 내 앞에 나타나 내 마음을 풀어주고 이렇게 보고싶을 땐 사라져버리는 그런 외계인... "자~ 오늘이 방학식이지만 너희들한테 다를껀 없다. 오늘도 야자를 하고 방학 이후로도 이와 같은 생활은 계속 될테니까 긴장 풀지 말도록. 예비 고3들." 선생님의 조례가 끝나자 여기저기서 아이들의 한 숨 소리와 어깨 처지는 소리가 들립니다. 정말 우리나라의 입시제도는 기가 막힙니다. 우리에게 완벽한 고통과 스트레스를 줄 수 있는 시스템을 어떻게 이렇게 잘 만들었는지... 서론이야 어떻튼.. 예비 고3에게도 겨울방학이 왔습니다. 방학이라 이름 붙이기 묘한 방학.... 오늘의 하루 일과도 이렇듯 끝났습니다. 언제나 그랬듯 우리는 달을 보며 하교합니다. "은하야~ 내일봐. 안녕~" "안녕~" "잘가~" 친구들은 모두 버스나 지하철을 타고 가기 때문에 전 저혼자 걸어갑니다. 처음엔 학교에서 집이 가까워 좋아했는데 2년 가까이 생활해본 결과.. 더 외롭습니다. '따르릉~' 저 앞의 전봇대에서 들리는 소리였습니다. 가까이 걸어가자 형체가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자전거를 짚고 서 있는 아이. "하루 일과가 끝나면 항상 이시간이야?" 이 추운 날에 그 아인 목도리 하나도 안 두르고 서 있습니다. 가까이서 보니 정말 외계인 같습니다. 이렇게 추운 날씨에 저렇게 살을 드러내고 있어도 붉지도.. 하얗게 터 오르지도 않았습니다. "빨리 타." "어?" "타라고. 태워주겠다고." 가만히 보니 자전거 뒷자석에는 목도리가 놓여져 있었습니다. 약속한 것도 아닌데.. 이렇게 절 기다려줬습니다. "오래 기다렸어?" "미쳤어? 이 추운 날씨에.. 방금왔어." 전 뒷자석에 올라앉았습니다. 그 아인 자신의 허리를 꽉 잡으라며 제 손을 자기 허리에 놓았습니다. 그 때 만져진 그 아이의 손... 방금왔다는 말이 거짓말이었다는 걸 알게 해주었습니다. 너무 차가워서.. 순간 제 몸에 소름이 돋을 정도였으니까요. 그 아인 페달을 밟기 시작했습니다. 제 얼굴은 그 아이의 등이 있어 춥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스타킹만 신고 있는 제 종아리 때문에 불어오는 바람이 얼마나 차가운지 알 수 있었습니다. "잠깐만 세워." "뭐하러?" "세워봐." 그 아인 천천히 자전거를 세웠습니다. 전 제 목도리를 풀어 그 아이 목에 감싸줬어요. 잠시 어색한 침묵이 흘렀습니다. 곧 그 아인 뒤돌아 보지 않은 채 말했습니다. "내 목도리 깔고 앉아있는게 미안하긴 한가보네." 그리곤 다시 페달을 밟았습니다. 이 아이의 이런 삐딱한 말투가 ... 이젠 듣기 좋습니다. 까칠한 말투 속에 따뜻한 속마음을 읽을 수 있으니까요. "여기서 왼쪽으로 턴." "..........." "두번 째 블럭으로 들어가야 돼." "..........." 어느 일류기사도 부럽지 않습니다. 비록 무뚝뚝하고 약간은 버르장머리가 없지만 지금 만큼은 저의 충실한 기사이니까요. "여기야. 여기 8층." 자전거는 드디어 섰습니다. 그 아인 아무 말 안했지만 전 알 수 있었습니다. 제가 내리기 편하도록 자전거를 옆으로 기울여주는 세심함 배려를.. "집에 불이 다꺼져 있잖아. 부모님 다들어디가셨니?" "아니. 원래 거실 불은 꺼놓으셔. 우리 엄마가." 왜 거짓말을 한건지... 거짓말을 할꺼면 완벽하게 해내든지.. 또 수도꼭지 풀어버렸습니다. 그 아인 말 없이 자전거를 끌고 앞쪽 놀이터로 향합니다. 그리곤 돌아보더니 고개로 절 부릅니다. 항상 멋있는 제스처만 골라서 합니다. 전 여전히 흐르는 눈물을 닦지도 않은 채 따라갔습니다. 그 아인 자전거를 조심스레 눕혀둡니다. 이제야 알았습니다. 저 아인 자전거를 소중히 다루는 구나.. 제가 오해했던게 부끄러워졌습니다. 우린 자연스럽게 그네에 앉았습니다. "너.. 거짓말 하면 어떻게 되는 줄 알어?" "..........." "코가 아주 많이 길어져." "흡.." 웃음이 나와버렸습니다. 재빨리 입을 다물어 멈췄지만... "너 울다가 웃으면..." "그만해. 안 웃겨." "웃고 있잖아. 지금." 정말 고마웠습니다. 거짓말 한게 들키면 참 많이 부끄러울 줄 알았는데 되려 제 무겁던 기분을 풀어줍니다. "나... 엄마 안계셔. 내가 아주 어렸을 때 돌아가셨데. 근데 우리 집은 제사도 안해.." ".............." 그 아이가 날 보는 시선이 느껴집니다. 제가 왜 이런 얘길 하는지.. 아직 한번도 남에게 해본 적 없는 얘기들을.. "근데.. 엄마가 보고 싶어. 다른 때는 괜찮은데... 잘 참는데.. 오늘은 왜 이런지 모르겠어.." 눈에서 떨어지는 눈물이 치마를 적십니다. 그 때 포근한 느낌이 제 폼을 감쌉니다. 전 놀라서 몸을 들썩였습니다. 그러자 그 포근한 느낌은 절 더 포근하게 감쌉니다. "남자라고 생각하지말고 겨울코트라고 생각해. 바람이 많이 차다." 그렇게 그 아인 절 한참 동안 안고 있었습니다. 제가 집에 들어가기 싫어한다는 걸 알고 있었는지.. 계속 절 그렇게 감싸줬습니다. 너무 따뜻해서 눈물이 멈췄습니다. 그런데 이미 흘렸던 눈물이 그 아이의 교복을 적셨습니다. 이렇게 따뜻한 아이가.. 왜 그날 뒷뜰에선 그렇게 무서웠을까요.. 그 아이의 목소리가 들립니다. "일본에서 많이 외로웠어... 한국인이라고 경계하는 사람들, 내 얼굴만 보고 한번 건드려보는 여자들, 아버지 없이 엄마랑 단 둘이 살아갈 때 느끼는 적막감.. 다 참기 힘들었어. 근데 그런 거 아무것도 아냐. 적막감.. 그거 아무것도 아냐. 은하야..." 그 뒤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서서히 그의 팔이 제 어깨에서 풀렸습니다. "더 늦기 전에 집에 들어가." "넌 추운데 어떻게 갈꺼야...?" "난 추위 안타. 이거나 받아." 그 아이는 교복마이 안 주머니에서 무언갈 꺼냈습니다. 베이비 로션.... ".......?" "너 맨날 그렇게 울면 겨울에 얼굴 다 갈라져." "안.. 갈라져..." "안 받을꺼야?" "내가 아기야? 내가 왜 이걸 발라?" "키는 밤톨만한게.. 오빠 말 들어라." 그러고는 제 머리를 쥐어 박습니다. 그 아이의 이런 점이.. 절 흔듭니다. 오빠......? 키 167cm의 결코 작다는 소리 안들어본 제가.. 이 아이에게 밤톨이라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저는 제 화장대에 있던 모든 스킨로션을 다 치웠습니다. 이것만 바르고 싶었거든요. 근데... 2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 로션.. 한번도 안발랐습니다. 아까워서 항상.. 뚜껑만 열어보고 닫았으니까요. 7000원도 안하는 그 베이비 로션이 아까워서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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