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6 │ 미정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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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세요? 아니.. 은하야..너 왜 그래?" "아빠..아...아빠...." 전 아빠를 끌어 안았습니다. 아빠는 아무 말 없이 절 품에 안으신채 현관문을 닫고 거실로 들어갔습니다. "아빠.. 오늘 .. 말없이 안가서 미안해.. 흑흑.." "우리 은하. 아빠 혼자 밥먹을까봐 걱정돼서 운거야?" "어.. 나는 .. 세상에서 아빠만 좋아.. 흑..." 아빠는 제 등을 계속 토닥토닥 두드리십니다. 아빠... 오늘 엄마를 봤어. 물론 아닐테지만.. 그치만 너무 닮았던걸. 나 순간적으로 흔들렸어.. 나한텐 날 키워준 아빠가 있는데.. 그 여자를 보는 순간 흔들렸어. 안기고 싶었어. 엄마라고 부르고 싶었어. 아빠.. 미안해.... 그러나 정작 아빠에겐 아무 말도 못했습니다. 아빠가 슬퍼할까봐... 전 알거든요. 아주 옛날 부터 제가 엄마 얘기를 할 때면 아무렇지 않은 척 제 말을 넘기셨지만.. 평소 피지 않던 담배로 밤을 지샌다는걸요.. 내일은 아빠가 함께 드라이브 가자고 했습니다. 원래 일요일도 서재에서 책과 함께 보내거나 세미나로 지방에 내려가시는 아빠였지만.. 제가 울면서 들어온게 맘에 걸리셨는지 데이트 신청을 하셨습니다. 아빠.... 나의 하나뿐인 가족 아빠... "일요일날 아빠랑 보내는 거 오랜만이다." "미안하다. 아빠가 하나뿐인 딸도 못챙기고." "괜찮아. 아빠 일 바쁘잖아." 아빠와 전 차에 올라탔습니다. 백화점에 가서 아빠와 제 잠옷을 샀습니다. 아빤 잠옷이 필요없다고 하셨지만 전 사고 싶었습니다. 어제 이후로.. 아빠가 안되보였습니다. 18년 동안 단 한번의 외도도 없으셨던 우리 아빠.. 남자 혼자 여자아이를 여기까지 키워주신 나의 아빠.. 문득.. 제가 처음 생리를 했던 때가 기억이 났습니다. 벗어서 몰래 감춰뒀던 제 속옷을 보신 아빠는 어찌할 바를 모르시다가 아빠 병원의 간호사 언니를 불렀습니다. 전.. 엄마가 아닌 잘 모르는 간호사 언니로 부터 생리대 사용법을 배웠습니다. 너무 부끄러웠지만... 아빠가 속상하지 않게 태연한 척 했습니다. 그 당시의 전... 아빠의 일기를 훔쳐보는 못된 버릇이 있었습니다. 일기까진 아니고 하루 일과 스케줄 옆에 한 두줄씩 적는 아빠의 메모.. 엄마가 없는 우리 은하가 너무 가엽다.. 나혼자서는 부모의 역할에 한계가 있는 것 같다. "은하야 뭐 더 사고 싶은거 없어?" "있어. 근데.. 아빠.. 여기 말고.. 나 가고 싶은 옷가게가 있는데.. 괜찮아?" 제가 왜 그랬는지... 아마 확인하고 싶었나봅니다. 그 여자는 나의 엄마가 아니란 것을.. 지금 확인하지 않으면 매일 그곳을 몰래 지켜볼 제 모습이 눈에 선했으니까요. "아빠 여기야." "여기에 니가 입을 만한 옷은 안 팔 것 같은데?" "그럼 안에 들어가서 보자. 아빠." 전 아빠의 팔을 끌고 옷가계로 향했습니다. "어서오십시오." 어제 그 여자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은석이의 모습도 전혀 찾을 수 없었습니다. "봐라. 은하야. 여기 어디에 니가 입을 옷이 있어?" "사실 나 옷 필요없어. 저기 남자옷도 있잖아. 아빠 옷 사면 안돼? 아빠가 새 옷 입은 거 보고싶은데." '쨍그랑.' 컵 깨지는 소리였습니다. 나와 아빠.. 그리고 점원은 뒤를 돌아봤습니다. .......... 어제 봤던... 그 여자였습니다. 그 여자.... "사장님 괜찮으세요?" "............." "............." 볼 수 있었습니다. 아니.. 너무 잘 보였습니다. 그 여자와 아빠의 눈이 마주치는 순간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뭔가가 오고가는 것을.. "맞구나.. 은하가... 맞구나...." 그 여자는 다짜고짜 절 안고 울었습니다. 전.. 의미를 알 수 없는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습니다. 아빠..... 이 여자... 정말 엄마 맞아요? 그러나 제 입은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그저 눈물만 계속 흘릴 뿐이었습니다. "은하야.... 엄마야.. 말 좀해봐.. 흑흑.. 은하야.. 응?" "엄마..." "그래....은하야..." "아니에요. 우리 엄마는 제가 아주 어렸을 때 벌써 돌아가셨어요. 아빠, 아빠가 말 좀 해봐. 이 여자 우리 엄마 아니라고 말 좀해봐!" 그러나 아빠는 아무 말 없이 서 있기만 하십니다. 그렇게 서있으면 어쩌자는 건지... "은하야.. 엄마가 미안했어...흑흑....은하야.. 내딸 은하야.." "아빠. 뭐해? 아빠는 왜 가만히 서 있기만해?" 눈물이 폭포수 처럼 흘러내렸습니다. 제 목소리는 서글픈 감정을 감추려는 듯 매우 앙칼져 있었습니다. "아빠!.... 아빠!..... 흑흑흑...." 전 뛰어 나갔습니다. 이 부띠끄에 두번 왔었는데.. 두번다 뛰어 나갑니다. 엄마라고 합니다. 너무 보고 싶었던 엄만데... 막상 보니까 왜 아무 생각도 없이 머리가 텅 비는건지.. 눈물은 계속 쏟아집니다. 유은석.. '너 뭐하니? 모자라는 거야?' 같이 흘렸던 코피... 혈액형 A형. 내 혈액형도 A형.. '난 귤 싫어해.' 나도 싫어하는 귤. '내가 갓난애길 때 일본 갔어.' 내가 갓난애길 때 돌아가셨다는 엄마. '엄마는 아는데.. 아버진 모르실 껄?' 엄마는 있는데 아빠는 없는 유은석.. '그나저나 재밌네? 유은하. 유은석. 하늘이 내려준 천생연분 같다.' 끝자만 다른... 꼭 남매같은 이름.. '아버지 없이 엄마랑 단 둘이 살아갈 때 느끼는 적막감.. 다 참기 힘들었어. 근데 그런 거 아무것도 아냐. 적막감.. 그거 아무것도 아냐. 은하야...' 적막감... 내가 느꼈던 적막감을 알고 있던 그 아이.. 역시.. 우연이라 치기엔 너무나 나와 비슷했 아이.. 그래서 더 좋아했는데.. 이제 어쩌면 좋을지... 가슴이 답답했습니다. 누군가 내 가슴을 열어 돌덩이들을 채워넣은 것 같았습니다. 너무 답답해서 숨 쉬기 조차 곤란했습니다. 제 가슴은 여전히 울고 있었지만 눈물은 더이상 나오지 않았습니다. 머리가 아파오고.... 걸을 수 없었습니다. 겨우 도착한 집앞에서 전 머뭇거렸습니다. 내가 들어가도 되는 집인지.. 이렇게 나한테 감쪽같이 속여온 아빠인데.. 엄마인데.. 내가 살아있는 의미가 무엇인지... 누군가.. 이 혼란함 속에서.. 알수없는 분노감 속에서.. 날 꺼내줬으면 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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