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5   미정
  hit : 270 , 2002-02-09 01:19 (토)




이렇게 유은석과 가까워 질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아직 누구에게도.. 친구에게 조차 맘을 열지 않던 제가

이 아이에게 맘을 열어갑니다.



"아~ 맨날 공부만 하고 앉아있는 이런 곰탱이 유은하도

사랑을 하는데 난.. 이게 뭐야?"

이미.. 학교엔 소문이 나 버렸나봅니다.

사랑...?

사랑이란 감정에 대해 전 잘 모릅니다.

다른 세상 이야기로만 믿었는데..

멀리 복도 끝에 은석이가 보입니다.

점점 가까워집니다.

가슴이 콩닥콩닥 뛰고 시선을 뗄 수 없습니다.

바로 옆을 지나던 순간 그 아이..절 또 당황하게 만듭니다.

"오늘 마치고 교문 앞에서 기다릴께. 같이 갈 곳이 있어."

"어...? 어."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지나다니는데..

그 앤 별로 신경이 안쓰이는지 계속 묵묵히 가던 길을 갑니다.

왜 이렇게 행복한지..

아닐테지만.. 모든 이의 시선이 저에겐

부러움의 시선들로 느껴집니다.

제가 이 순간은 제일 행복한 사람인 것 같습니다.














'따르릉~'

역시나 먼저 나와 전봇대에 기대 서 있습니다.

"오늘 토요일이라서 아빠 병원에...."

"빨리 타. 간다~"

사실.. 오늘 아빠 병원에 들러서 같이 점심 먹기로 했는데

아빠한텐 미안하지만.. 못 지킬 것 같습니다.

"어디 가는데?"

"보여줄게 있어. 오늘 아니면 안돼."

자전거는 오토바이 부럽지 않은 속도로 달렸습니다.

전 혹시나 바람에 흩날리는 제 머리카락이 그 애의 시선을 가릴까

한 손으론 머리카락을 계속 쓸어넘기며

나머지 한손으로만 아슬아슬하게 그 아이의 허리를 잡고 있었습니다.










"자 여기서 내려야 돼."

"멀어?"

자전거가 멈춘 곳은 지하철 역이었습니다.

"그렇게 멀진 않은데 자전거로 가면 추워서 안돼."

"나 괜찮은데.. 너 나 걱정해서 그런거 맞지?"

".....내가 추워서 그래."

잘못 본 걸까요?

절대 흐트림이 없을 것 같은 그 아이의 얼굴이 순간

붉게 물들어졌습니다.

"근데 자전거 가지고 전철타도 돼?"

".....야이 맹꽁아. 이걸 어떻게 들고 가?"

"그럼..?"

은석이는 말 대신 옆에 있는 자전거 보관대로 가서

자물쇠를 채웠습니다.

"가자."

토요일 오후라 지하철이 만원입니다.

우리 앞에 지하철이 섰습니다. 그런데.. 발 하나 들여놓을

공간도 없는 것이었습니다.

"어쩌지..?"

"이리와봐. 넌 조심 안하면 깔려 죽을꺼야."

그 아인 제 팔을 획 잡더니 지하철 속으로 뚫고 들어갑니다.

그 긴팔로 인파를 헤치며 맞은편 문 앞으로 갔습니다.

"여기면 안전하겠지?"

"어.. 악!"

그 때 갑자기 절 밀고 지나간 아주머니 때문에

제 얼굴이 유리에 딱 붙었습니다.

"아... 아파.."

".........흡..흡..."

호흡 소리가 이상하게 들립니다.

"너 왜 그래?"

".......흐...푸하하하~"

이런... 또 사람들의 수근거림이 들립니다.

정말 남의 시선이라곤 절대적으로 신경쓰지않는 아이입니다.

"그만.. 웃어."

"크...큭.. 미안하다. 웃어서... 하..하..."

결국 실컷 웃은 그 아인 그제서야 숨을 고릅니다.

갑자기 제 눈이 지하철 안을 마구 비춥니다.

머리가 벗겨진 남자, 여드름이 울긋불긋한 남자,

눈이 작고 삐쩍 마른  남자, 뚱뚱한 체구의 남자....

그에 비해 ..

큰 키에 새하얀 피부, 뚜렷한 이목구비...

정말 누가봐도 잘생긴 유은석.

왠지 어깨가 으쓱합니다.

"자.. 준비 됐어?"

"오케이~"

"하나~ 둘~.....셋!"

"셋!~~~"

지하철 문이 열리고 저희는 감옥을 탈출하듯

겨우 나왔습니다.

눈이 마추쳤습니다.

흐트러진 머리, 기울어진 교복마이....

"너 지금 진짜 웃겨. 헤헤~"

"너도 만만치 않아. 이 맹꽁아."

우리는 한참 서로를 놀리며 걸었습니다.

"자~ 여기야. 들어와."

"..........?"

예쁘다...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정말 비싸보이는 옷들이 디스플레이 된 쇼윈도..

그 아인 아무렇지도 않은 듯 이런 곳에 들어갑니다.

"빨리 들어와."

"어... 근데......"

"어. 누나 엄마는요?"

"지금 사장님 곧 들어오실꺼야. 잠시 거래처 사람 만나신

다고 나가셨거든."

"그럼 기다려야겠네.. 은하야~ 뭘 그렇게 넋을 잃고 있어? 이리와봐."

"엄마가.. 이 곳 사장님이시구나."

정말 부자인 것 같았습니다.

대체 이런 부띠끄를 하나 가지려면 얼마나 돈이 많아야 할까요..

"정말 대단하다...."

"내가 보여준다는건 이 옷가게가 아니라.. 바로 .. 이거야."

은석인 뒷쪽 커튼에서 뭔가를 꺼내왔습니다.

".....예쁘다...."

마네킹에 입혀진 그 옷은.. 정말 거짓말 하나 하지 않고

제가 세상에서 태어나 본 옷 중 가장 예뻤습니다.

답답하지도 야하지도 않은 수줍은 듯한 어깨라인...

종아리를 아슬아슬하게 보여주는 치마 끝자락..

사치스러운 보석과 레이스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정말 새하얀 원피스.. 아니.. 드레스..

"그거 우리 은석이가 만든 거예요."

"어! 엄마? 나 방금 왔는데.."

뒤에서 들리는 깔끔하고 온화한 여자의 목소리..

은석이의 엄마인 듯 했습니다.

"저 숙녀분은 누구니? 은석이 너.. 한국 온지 얼마나 됐다고.."

잘 보여야 겠다는 생각에 안 들리는 헛기침을 하고

돌아섰습니다.

"안녕하세.........."

갑자기.. 갑자기 알 수 없는 뜨거운 액체가

저 깊은 곳에서 부터 흘러나왔습니다.

그건 18년의 세월을 살아가며 한번도 잊은적이 없던..

너무나 보고 싶어 그리워하다

내가슴에 수많은 벽을 만들어 놓았던 사진 속의 주인공..

나의... 나의....

"엄....마......."

"..............."

"..............."

눈물이 흘러내립니다.

한줄기도 아닌 두줄기 세줄기가 눈물샘에서

마구마구 흘러내렸습니다.

다리가 후들거리고 눈 앞이 노랗게 물들어갔습니다.

"은하야.... 괜찮...아?"

얼핏 들리는 그 아이의 목소리..

전 문을 박차고 나와 뛰었습니다.

누군가 쫓아오는 소리가 들렸지만

제 발은 멈추질 않았습니다.

무작정 택시를 잡았습니다.

"아저씨.. 빨리 우리아빠 한테 가줘요.. 빨리요.. 흑흑.."

"이봐 학생. 거기가 어딘지 말을 해야 알지."

"아빠.. 흑흑...아빠한테 빨리.. 가야 돼요.. 흑흑.."

택시기사 아저씨의 인내심은 거기까지었는지

저에게 소리를 지르며 내리라고 했습니다.

전 문을 열고 내려 무작정 뛰었습니다.

지하철을 타고 왔던 거리를 아무 생각 없이 뛰었습니다.

내가 생각하고 있는게 아니길 바라면서...

정말 생각하기도... 생각 할 수 조차도 없는..

아니길 바라면서 뛰었습니다.




   기억...7 02/02/15
   기억...6 [3] 02/02/09
-  기억...5
   기억...4 02/02/07
   기억...3 02/02/07
   기억...2 [2] 02/02/06